Travel/Germany 2013

[이탈리아] 베로나 1

비일상ss 2016. 5. 20. 17:16

이탈리아 여행 셋째 날, 베네치아에서 베로나로 가는 기차 안. 아침 7시 기차를 타기 위해서 새벽 6시부터 일어났다. 많지 않은 짐을 챙겨 아무도 없는 리셉션에 키를 올려놓고 나왔다. 

*이탈리아 열차 예약 팁 : 이탈리아는 미리미리 예약을 하면 정말 저렴하게 기차를 탈 수 있다. Mini요금이라고 하는데, 3-4개월 전에 여행 일정이 확정된다면 꼭 미리 온라인으로 예매할 것! 다만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점, 이탈리아어를 모르면 온라인 예매와 지불 절차가 꽤 복잡하다는 점은 미리 염두에 두시길.

이른 아침의 베네치아 거리는 청소부들과 드문 드문 보이는 여행객뿐, 사람이 별로 없다. 기차역에서 대충 스낵류로 허기를 채우고 베로나로 가는 열차를 탔다. Ciao Venezia!


나는 때때로 사소한 것에서 이상한 고집을 부릴 때가 있는데, 에스프레소가 대표적인 예다. 

고등학교 때부터 첫 에스프레소는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마셔보겠다면, 의식적으로 한국이나 독일에서 한 번도 주문하지 않았다. 베로나에 도착해서 숙소 체크인까지 시간이 남아 카페 겸 레스토랑에 갔는데, 여기서 내 첫 에스프레소에 도전했다.

베로나 시내의 Caffe at  Teatro에서 처음으로 마셔본 에스프레소는 향도 맛도 '매우 좋음'!

-우노 카페 에 우노 라자냐, 뻬르 파보레Uno Kaffee et Uno Lasagna, per favore.(커피 한 잔이라 라자냐 한 개 주세요.)

어설픈 이탈리아어에 훈남 웨이터가 이탈리아어로 뭐라뭐라 한다. 나 이탈리아어 몰라~표정을 지으니까 영어로 말한다. 

-That's all?
-Yeap.

*한국 사람들은 종종 에스프레소를 그냥 쓴 채로 마시는 게 정석이라고 생각하는데, 이탈리아 현지인들도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어 마신다. 그냥 마시면 정말 쓰다.

브라 광장 한 쪽에 있는 아레나. 이 곳에서 여름마다 열리는 야외 오페라 축제를 위해 베로나에 왔다. 내가 볼 공연은 아이다!
놀라운 일이다. 그 옛날에 지어진 아레나에서 베르디의 아이다를 2013년에 돌계단에 앉아 관람한다는 것은. 

어차피 밤에 들어가 볼 것이므로 오페라 티켓만 끊고 Tourist information center에서 지도를 받아 줄리엣의 집에 가기로 했다.

아레나 앞에 나와 있는 오페라 무대 설치 장비들.
사람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브라 광장에서 줄리엣의 집으로 가기 위해 에르베 광장으로 향하는 길. 베로나의 메인 스트릿 중 하나로 루이비통같은 명품 브랜드부터 스트라디바리우스나 자라같은 중저가 브랜드들까지 모두 모여 있는 쇼핑 스트릿이다.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모두 섞여있다.


줄리엣의 집Casa di Giulietta를 향하는 표지판. 

줄리엣의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수 많은 낙서들로 뒤덮혀있다. 


영화 Letters to Julliet을 아주 아주 좋아했던 나로서는 기대가 컸지만 모든 관광객들이 그렇듯 생각보다 지저분하고 작은 줄리엣의 집에는 금방 실망했다. 정말 작다. 영화때문인지 사람도 많다. 그래도 한번은 가볼만 하다.
동상으로 서 있는 줄리엣은 별루 안 예쁘다. 

입구뿐만이 아니라 벽에도 붙어있는 수많은 사랑의 편지들. '우리 사랑해요' '사랑을 이루어지게 해 주세요' '그 남자를 잊게 해주세요' '우리 가족 모두 사랑해!' '올해도 건강하게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등등... 사랑얘기부터 가족얘기,단순한 기원까지 수없이 많은 소망이 줄리엣의 집에 간직되어 있다. 벽에 붙여진 수 많은 껌딱지들과 그 위에 쓰여진 소망. 

오, 로미오. 당신은 왜 로미오인가요!
줄리엣의 집의 발코니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한다. 나는 올라가지 않았다. 설령 내가 올라가더라도 나를 사진찍어줄 동행도 없다. 하지만 예쁜 언니가 올라가서 줄리엣을 따라한 걸 찍었다. 

줄리엣의 집을 나와 정처없이 걸었다. 베로나는 크지 않은 도시이고, 예약한 숙소의 체크인 시간이 오후 3시부터였던지라 갈 곳이 없었다. 더군다나 한여름의 햇빛에 많은 상점들이 12-3시 사이에는 문을 닫은 채였다.

갈 때도 없고, 배낭도 무겁고.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아디제 강. 혼자 여행할 때 가끔씩 이런 적막감을 느끼고는 한다.
강가는 그늘 하나 없이 너무 햇빛이 직빵이라 사진만 찰칵찰칵 찍고 얼마 못가 금새 자리를 옮겼다. 터벅터벅 걷다보니 공원이 나왔고, 가리발디 장군의 동상이 있었다. 배낭때문에 어깨가 빠질듯이 아픈데 레스토랑은 비싸니까 공원 벤치에 앉았다.

하지만 나는 비둘기가 참- 많은 이탈리아에서 나무 아래 벤치가 위험하다는 걸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배낭을 벤치에 놓고 그늘 아래에 앉아서 어깨를 주물럭거리면서 쉬고 있는데, 

툭. 투둑. 투두두둑.

아.....비둘기...........................................................................................


벌떡 일어나 분명 비둘기 소변(으로 추정되는 그 뜨거운 물)이 떨어진 팔을 생수로 씻어내고 배낭을 확 매고 다른 벤치로 걸어갔다. 이번엔 무서워서 그늘 한 점 없는 곳에 앉았다. 흥분이 진정되자 좀, 웃겻다. 혼자 여행하다보면 정말 별 일이 다 생기는 구나. 하하..

아직 체크인 하려면 2시간 넘게 남았는데 더 이상 야외에 있을 수는 없었다. 언제 비둘기에게 공격당할지 몰라 무서웠다. 돈을 내더라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곳, 대성당Duomo으로 향했다.

Duomo, 세피아 톤.
Duomo, 모노톤.
Duomo, 경건해진다.

오후 세시가 되지마자 두오모를 벗어나서 숙소로 향했다. 네이버를 탈탈 털었을 때 나왔던 리뷰들처럼 리셉션의 아줌마는 그렇게 친절하진 않았지만 쉴 곳에 도착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숙소만큼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오래 된 건물이었던 그 호스텔에서는 리셉션에서부터 복잡한 복도를 지나 위층 끝방인 도미토리에서 자게 되었는데, 그 도미토리도 복층이어서 2층의 창문 옆 침대에서 묵었다. 하지만 그 날 따라 사람이 별로 없었고 2층은 온전히 내 차지였다.

소박한 숙소는 정말, 수녀원이었다. 옛날 성당 도서관에서 꺼내 본 책 속 프란체스코 성인의 어린 시절 수도원 다락방처럼, 초딩 때 갔던 수녀원 경험의 수녀님들 숙소처럼! 나무로 된 창문과 끼익거리는 침대, 계단을 올라올 때마다 크게 울리는 삐걱거림, 작은 철제 캐비넷, 창문을 열면 보이는 베로나의 주황색 지붕들, 그리고 저 멀리 성당의 종소리.

다시 베로나에 간다면 또 여기서 묵을 것이다.

졸지에 비둘기님의 화장실이 되었던 몸을 깨끗이 씻고 흰색 이불 위에서 뒹굴뒹굴 놀다가 시내 구경도 하고 저녁도 먹을겸 나왔다. 렌즈 식염수를 안 갖고 와서 샀는데 100ml에 4.95유로. 유럽은 식염수가 참 비싸다. 독일도 프랑스도. 하지만 그 중에 갑은 역시 이탈리아다.

독일에서 6개월 정도를 살고 또 유럽 내 여행을 자주 다니다보면 사실 사람 사는 원리는 다 비슷비슷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이탈리아에도 나는 금방 적응했다. 에르베 광장보다는 호스텔 근처의 작은 과일 가게가 더 싸고 맛있을 테니, 거기서 딸기 한 팩을 샀고 봉지를 달랑달랑거리며 걷고있었다. 너무 여유로워보였을까? 이탈리아 할머니 한 분이 Scusi(실례합니다.), 하며 다가오시더니 이탈리아어로 버스 시간을 물어보셨다. 아이고 할머니 전 현지인이 아닙니다. 저도 여행자에요. 오히려 할머니가 더 로컬같으신데. 이탈리아어 못해요, 미안합니다 :), 라고 말하고 다시 가던 길을 가면서 나도 모르게 씩 웃었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가끔씩 나는 내가 참 고지식하다고 할까 우직하다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베로나에서도 한번 그런 생각을 했다. 야외 오페라 아이다는 저녁 9시에 시작해서 새벽 1시에 끝나는데,얼핏 티켓 살 때 보니 카메라 금지 기호가 있어서 카메라는 아예 들고 오지 않았다. 남의 나라에서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오페라가 시작하고 나서는 찍지 않는게 맞지만, 그 전에는 찍어도 됬는데.. 카메라를 아예 들고 오지 않아서 아레나 내부 촬영은 물론 끝나고 돌아오던 베로나의 밤거리도 찍지 못했다. 카메라 들고 올걸. ㅠㅠ

독일에 있을 때는 관광지가 아닌 곳에 있다보니 여행객 자체가 드물고, 한국인 여행객은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탈리아에는 한국인이 참 많았다. 베네치아 뿐만 아니라 베로나도 꽤 입소문을 탄 건지, 오페라 덕분인지 한국인 관광객이 눈에 자주 보였다.
대개 젋은 대학생일 경우가 많고, 그 외에는 4인 가족단위가 많았다. 그리고 사람이 많다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오페라를 보기 위해 돌계단(가장 싼 좌석)에 앉아 인터미션 때 먹기 위한 간식을 가방 안에 다시 잘 정리하고 막이 오르기만을 기다리공 있었다. 원래 30분 전 정도에 미리 들어와서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게 예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이 오르기 직전에 한국인 대학생 남자 3분이 들어왔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틈을 비집어 앉았다. 앞에 앉은 유럽인들은 계속 뒤를 돌아봤고 그 사람들 뒤에 앉아 모든 한국말을 다 알아듣고 있었던 나는 얼굴이 화끈해졌다. 정말 창피했다. 막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그들은 계속 냄새가 심하게 나는 음식물을 먹었고 옆에 있던 사람들은 계속 그 쪽을 힐끔거렸다. 
다행인 건 그 사람들이 아이다를 보러 왔으면서 아이다의 기본적인 내용도 모르고, 오페라의 아리아를 지루해했고, 그래서 결국 2막인가 3막이 끝나고 바로 나갔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해진다. 그 이후로 여행 중 남자 대학생들끼리만 온 일행이 있으면 그냥 피하게 된다. 일반화의 오류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첫인상이 바뀌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유럽여행을 가서 만난 대부분의 한국인 여행자들은 예의 바르고, 어글리코리안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종종 예외를 발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보다.

새벽 1시에 숙소로 얼른 돌아와 찍은 베로나 거리의 모습. 오페라가 끝나고 숙소나 레스토랑으로 가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저 멀리 들렸다. 여름밤공기가 제법 차가웠다. 

* 숙소 추천 : Casa della Giovane (여성전용 호스텔)
http://www.booking.com/hotel/it/protezione-della-giovane.ko.html

*사진은 Booking.com에 올라와 있는 호스텔 입구 사진.

숙박일 : 2013.07.17~18(1박 2일)
금액 : 1박 22유로(Female Dormitory, 10인 이상)
직원 친절도 :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불쾌할 정도는 아니었음. 사무적인 태도.
와이파이 속도 : 느리고 종종 신호를 잃음.
위치 : 아레나에서 도보 10분 소요, 오페라 보고 밤에 오기 좋음.
기타 : 여성 전용 호스텔이라 안전, 조용한 분위기라 편히 쉴 수 있음, 조식 X, 타올 O, 여름 성수기 이탈리아임을 감안했을 때 저렴한 가격, 1700년대 지어진 건물이라는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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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0 - [Travel/Exchange Student in Germany 2013] - [이탈리아] 베네치아 1

2016/05/21 - [Travel/Exchange Student in Germany 2013] - [이탈리아] 피렌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