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 시내에서 떨어진 호스텔, 도미토리 2층 침대에 누워 오전을 보냈다. 다른 여행객들이 부지런하게 시내에 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바스락거리는 시트의 감촉을 느끼며 공기 속에 녹아드는 것처럼 숨만 내쉬고 있었다. 심심한데 움직이기 싫은 그런 기분, 딱 그 기분이었다.
벌컥 문이 열린 건 슬슬 일어나볼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말하자면 새로 들어온 동료 여행자에게 인사하기 좋은 타이밍이었다는 것이다.
안녕, 어디서 왔니? 커다란 배낭을 매고 들어온 사람은 이스라엘 여자였고, 프랑스 여배우 마리옹 꼬띠아르랑 닮은(사실 정말 똑같이 생겼었다, 마리옹 꼬띠아르가 들어온 줄 알았다. 심지어 목소리도 허스키했다!) 예쁘장한 여자애였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잠시 포르투를 들렸다고 했다.
도시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그 여자애가 물었다. 어떻게 하다 포르투갈까지 왔니?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취업과 대학원을 고민하다가 머리를 식힐겸 배낭여행을 떠났지. 아주 상투적이면서도 그럴듯한 변명이었다. 사실 당시의 나는 그냥 놀고 싶었고, 더 이상 쌓을 스펙도 없다고 자만했었다. 그리고 말 버릇처럼 한 마디 덧붙였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어, 돌아가면 현실을 마주해야 해.
(I don't wanna go back, then I have to face my reality.)
그 여자애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하지만 현실도 좋은 곳인걸, 즐겨!
(Yes, but a reality is nice thing, Enjoy!)
왜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대화는 이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게 되었다.
한번도 현실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탓일까, 항상 현실에 불평불만을 했던 탓일까. 나는 매년 여행을 떠났었고 부모님은 그것을 방랑벽이라고 했다.
귀국 후 취업준비를 하면서 제출한 모든 자소서가 불합격일 때도 있었고, 최종합격을 한 경우도 있었다. 그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그 여자애의 말. 그래, 생각해보면 현실도 좋은 곳일 수 있는 것이다. 상황이 나쁠 때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상황이 좋을 때는 그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것. 그 한마디가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결코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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